마지막 미소
동시사랑 이문자
그는 정말 괜찮은 남편이었다.
숙의 남편은
여러 해를 숙의 이웃에서 살았다
오랜 교제 끝에 더 없는 축복 속에서 결혼이 이루어졌고
이후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그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정답게 살아왔다.
물질적으로도 별 어려움이 없었고 그들의 세 자녀는 말짓없이 잘 커 주었다.
숙의 남편은 온화한 사람으로 말소리 조차도 나직하고 상냥하였다.
그 남편은 집안 일을 위해서나 세 자녀를 위해서 늘 몸을 사리지 않았다
집안에는 이웃들이 부러워 할 만큼의 여유와 웃음이 늘 있었다.
숙은 나를 만나 이야기가 이어지면 늘 하나님과 남편에게
감사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누구의 시샘이었던가?
숙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신부전증이 심해지고 마침내는 정기적으로
투석을 하여야 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워낙이 연약하였던 데다가 연년생 세 자녀를 돌보는 일과
요조숙녀의 모습을 흐트리지 않은채 집안을 건사하려 애썼으니...
더 이상 감당이 안되어 기어코 발병한 것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친정이나 이웃의 도움의 손길도 조금은 가능할 터이나
이곳 미국에서 숙은 모든 어려움을 소리없이 혼자 감당하였다.
남편은 병든 아내에게도 극진하였다.
수년 간을 찡그리는 일도 없이 정성껏 아내를 돌보았다.
숙은 나를 만나면 이 점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던가?
뭐 그 일이 꼭 남편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고국에서 숙의 이웃에 살던 여자가 훌쩍 미국으로 날아 온 것이었다.
우선은 불법 체류를 하면서라도 무슨 방법으로든지 영주권을 취득하고
미국에서 살려고 작정하였단다.
이는 쉽지 않은 일,
들키면 체포가 되고 추방이 되는 무서운 일인 것을...
보통 사람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을 젊은 여자가...
참으로 당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숙은 오갈 데 없는 이웃을 집안에 거두었다.
처음에는 "언니! 언니! "하면서 곧잘 집안 일도 하고
무척이나 살갑게 굴더니만
어느 날 기어코 그 남편을 꼬여낸 것이었다.
숙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을 당하고서도.
그 남편을 원망하기 보다는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기어이 둘은 살림을 나가고...
이따금 쓰레기를 치워 주려고 집에 들리는 남편!
그 기약할 수도 없는 날을 기다려
숙은 아픈 몸을 이끌고 남편이 좋아하던 찌개도 끓여 놓고,
정성껏 상을 준비하고 그를 기다렸단다.
이 일이야 말로 너무나 비참하고 힘든 일이란다.
기어이 숙은 눈물을 떨구었다.
나도 숙의 아픔에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위로 두 아들은 미국의 명문학교를 마치고
이미 결혼을 하여 독립하여 살고 있고,
막내로 딸 하나가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터에...
숙이 가끔 내게 말하였다.
딸 아이를 짝지워 주고 나면 아무 미련도 없겠다고... 죽고 싶다고...
나는 숙의 이 말이 마음은 아팠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 어느 도시에서 결혼식이 있단다.
숙은 결혼식 때 입을 고운 빛깔 한복을 맞추었고
뉴저지의 대형백화점에서 분홍 빛깔의
값비싼 슈트 한 벌을 장만하였다.
아름다운 가방에다 반짝거리는 구두까지...
숙은 이것들을 내게 펼쳐보이며 즐거워하였다,
바알갛게 달아 오른 얼굴에 미소가 머물었다.
숙의 이런 모습을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나의 얼굴에도 슬그머니 웃음꽃이 피어났다.
"결혼식이 끝났겠지! 이제 돌아올 때가 되었네!"
기다리는 나에게
난데없는 소식은...
숙이가 갔단다.
막내 딸의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 여행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 밤에...
아아! 내 친구 숙이, 이렇게 속절없이 가버렸다.
마지막 그 얼굴에 피어 오르던
복숭아 빛 그 미소를 내게 남기고...
곱고 다소곳하고 사랑스럽던,
내게 늘 따뜻하던,
그 숙이가 갔다.
숙이가 몹시 측은하고 가련하다.
오래도록 내 마음이 저리고 아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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