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분의 이름

      날짜 : 2019. 09. 03  글쓴이 : 이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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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분의 이름


                                          동시사랑   이문자



        그 분의 이름은 김 홍태이다.

        그 분을 뵙지 못한지 어언 40년이 지났지만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분은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시다.

        그 분은 아직도 조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리고 그 분이 하나님께 서약하신 바 대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계시리라.

        나의 이 생각은 추호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의 서두에 아무 주저없이, 거리낌 없이 그 분의 성함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신실하시고, 바르고, 반듯하게, 모범으로 일생을 살아 오셨음을 

        불을 보듯 환히 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보고 들은 바 없어도 나는 확신한다. 


        말씀으로 나누진 않았지만 그 분도 역시 우리 부부를 극진히 사랑하셨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알 수 있다.

        지금도 남편과 내가 그 분을 뵈러가면 반가히 맞아 주시겠지만 나는 그리하지 못하였다.

        .

        이따금 주체치 못할 그리움으로 그 분이 떠오르면 

        인터넷에서 그 분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그분께서 무탈하시고 건강하게 잘 계심을 확인한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한다.


        그분의 숙소는 늘쌍 문이 열려 있고 아이들이 북적인다.

        아이들은 뛰고, 떠들고, 고성을 지르고, 맘 내키는 놀이를 마음껏 즐긴다. 

        그 분은 집을 비우면서도 거리낌 없이 아이들에게 집을 제공한다.

        아이들을 귀가 시킬 때는 꼭 축복의 기도를 드려 주신다.


        늘 자애로우신 웃음이 흐르는 얼굴, 

        그 분이 역정내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그 분은 오래 전 우리 부부가 출석하던 교회의 목사님이시다.

        교회에는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교인이 많았고 목사님께서는 

        어김없이 출석을 부르셨다. 

        새벽기도가 끝난 후에는 목사님 방 벽에 붙여 놓은 전 교인 가족 사진을 보며 

        그 날 출석한 교인의 가정을 위해 꼭 기도를 하여 주셨다.

        아침 서너 시간을 족히 교인을 위한 축복 기도에 할애하셨다.

        교회 안팎에서 교인을 대하면 교인들의 자녀의 이름을 불러 

        자녀들의 안부 부터 묻는다.


        목사님은 혼자 사신다. 결혼을 하지 않으셨다. 

        목사님이 열 댓살 되었을 때에 6.25가 발발하고 

        그때 북한 놈들이 청소년, 아이들까지 의용군으로 끌고 갈 때 목사님은 

        줄 말미에 서서 가다가 소변을 보겠다며 대열에서 쳐졌다고 한다. 

        총을 겨누고 뒤를 지키던 북한군 둘이 목사님을 기다리며 약간 지체하다가 


        "아주 조그만 놈이니 그냥 두고 가자."


        하며 목사님을 두고 가 버렸단다.


        그 때 목사님께서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평생토록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서원의 기도를 드렸다 한다. 

        이후 목사님은 그 서원을 지켜 목사가 되셨고, 평생토록 결혼을 하시지 않으셨다.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교회는 국군 영관급 장교들이 엄격하게 선발 되어 

        일년 간 교육을 받는 육군대학의 영내 교회이다.

        육군대학의 교육을 마쳐야만 군대 내에서의 승진을 기대 할 수 있다.



        기간 중 학생들은 몇 차례의 부부동반 회식을 가진다. 


        그 첫 번 회식에서 학교장이 술을 돌렸다. 

        (그 분은 투 스타이시다.)

        학교장은 건배를 제의하셨고 목사님(목사님은 군목 중령이셨다.)

        께서도 술을 마시도록 하셨다.


        목사님은 끝내 술을 마시려 하지 않으셨고

        교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행사장을 나가 버리셨다.


        회식에 참석했던 모두가 간이 콩알만 하여졌고, 

        그 일이 어떤 불똥으로 튈까? 염려가 컸다.


        "그깟 술 한 잔이 무언데... 쯧쯧쯧..."


        "마셔도 되지 않을까?"

         

        "아니야! 마시면 안되지!"


        행사에 참석했던 이들의 생각이 분분하였다.


        이튿 날 우리들에게 들려온 소식은 의외 였다.


        학교장님께서 목사님을 면담하고 사과를 하셨다 한다.


        "참으로 목사님다운 우리 목사님!

         아니래도 매사 존경이 듬뿍가던 우리 목사님이신데..."


        교인들의 신뢰는 더욱 커졌다. 


        이후, 근무처를 옮아다니며 교회를 옮겨 다니던 중에 

        러시아 선교단이 우리 교회에 왔다.  

        예쁜 러시아 아가씨들이 한복을 지어입고 

        유창한 우리 말과 러시아 말로 성가를 준비하여 왔다. 

        나는 선교 합창단 러시아 아가씨들 여러 명을 우리 집에서 재웠다. 

        그리고 목사님의 청대로 선물꾸러미를 꾸려, 이들에게 하나 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통솔하신 목사님이 신실치 못하고 무언가 믿음이 덜가는 목사님이셨다. 

        (그 당시의 정평이 그러하였다.)

        나름 수고 하셔서 선교의 일을 하고 계시기는 한데...


        몇 년 후 선교사목사님이 김 홍태목사님과 연결되어 

        김 홍태목사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러시아 선교 일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순간 나는 안도했다. 


        "하나님께서 연결해 주셨구나! " 


        이후 선교사목사님을 뵈었더니 

        그 모습이 김 홍태목사님과 흡사히 닮아 있었다. 


        "교계에서 성자로 일컬어지는 김홍태목사님,"


        그 분께서 사람을 변화시키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분 곁에서 살고 싶다. 

        성령으로 변화 되신 분,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신 분, 

        그 분의 아름다운 삶을 본 받으며 살고 싶다.


        이는 내가 늘 생각해 보는 일이다.



        목사님!  잘 계시죠?

        그리워요. 

        그립습니다.






        [1004 군인교회가 희망이다] “15년간 세례받은 266만 장병 제대 후 어디로 간 걸까요”

        86세 예비역 중령 김홍태 목사


        [1004 군인교회가 희망이다] “15년간 세례받은 266만 장병 제대 후 어디로 간 걸까요” 기사의 사진
        김홍태 목사가 9일 서울 중구 서울시니어스타워 자택에서 국방대학원교회 목회시절부터 갖고 있던 교인 목록을 가리키며 미소 짓고 있다.
        86세의 노신사는 ‘군 선교’라는 말이 나오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예비역 육군 중령 김홍태 목사는 “군 선교에 은퇴란 있을 수 없다”고 외치는 영원한 현역이다. 일생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김 목사는 요즘도 장병들의 신앙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 결과 ‘군인 신앙교육 교재’까지 만들고 있다. 한국기독군인연합회 등 군 선교 단체들과 협력해 전국의 1004군인교회를 통해 배포, 장병들의 신앙교육 교재로 활용할 예정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인 김 목사는 1958년 군목으로 임관해 81년 전역할 때까지 오직 군 복음화만 생각했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다산로 서울시니어스타워에서 만난 김 목사는 “바울처럼 복음만 전하고 싶어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군 선교는 전역 후 더욱 빛을 발했다. 육군대학교회에서 목회하다 81년 교회가 없던 국방대학원에 부임해 ‘강의실 예배당’을 개척했다. 부임한 그해에 전역했지만 줄곧 ‘민간인 사역자’ 신분으로 국방대학원교회에서 목회하다 2002년 은퇴했다.

        김 목사는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결실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 믿음은 그의 목회 여정 내내 수식어처럼 따라 다녔다. 실제로도 큰 결실을 거두기도 했다. 육군대학교회에선 1530명, 국방대학원교회에선 2500명을 전도했다.

        “이분들은 교회 출석만 하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아니라 ‘주일성수’와 ‘새벽기도’ ‘십일조 생활’ ‘1년에 2명 이상 전도’ ‘매일 성경 읽고 실천하기’ 등 5가지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교인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교인들이 엘리트 장교들이어서 하급부대로 복음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효과도 컸습니다.”

        김 목사가 양육에 방점을 찍고 군인 신앙교육 교재를 만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인들에게 세례만 베푼 뒤 그대로 두면 절대 제대로 된 교인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에 따르면 98년부터 2012년까지 군에서 세례 받은 인원은 265만8290명이다. 이들이 제대 후 교회에 잘 정착했다면 같은 기간 한국 기독교인수가 엄청나게 늘었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김 목사는 “세례만 베풀었지 양육을 하지 못해 다 흩어져 버린 셈”이라며 세례에만 집중하는 군 선교 현실을 꼬집었다. 인터뷰 말미 그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군 선교만 생각하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후원 문의 02-781-9418). 

        글·사진=장창일 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80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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