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놓아야 산다

      날짜 : 2019. 07. 04  글쓴이 : 이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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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놓아야 산다


                                     동시사랑   이문자



        물놀이 용 커다란 비닐가방 속에는,


        친구가 내게 보내준 그의 처녀시집, 

        (친구는 내게 시집 한 권을 달랑 남겨놓고

        다시 못 올 아득히 먼 곳으로 가 버렸다.)


        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은 생각지도 않나? 

        이 무정한 친구야! 


        친구의 생각이 나면 한 동안 슬픔이 물밀듯 일어 

        정신을 추스르기도 힘들었다. 

        그 삶이 외로운 친구였기애 더욱 나의 슬픔은 컸다.

        그러나 어찌하나?

        나는 이제 그를 잠잠히 보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친구에게 선물하려던 예쁜 손 지갑, 

        (이젠 보낼 길이 없다.)


        그것 외에는 별 것도 없었다.

        나와 아이들의 수영복 

        비치 타올, 

        화장품 몇 개,

        작은 돈지갑, 

        먹고 남은 도시락과 간식.. 


        이것들이 들어 있던  야외용 어깨걸이 

        커다란 비닐 가방 

        이것 지키려다 나와 내 아이가 목숨을 잃을 뻔 하였다.



        홍천강 상류는 물 빛깔이 짙푸르고 수심이 깊었다. 

        그러나 상류에서 흘러 내리다가 지형상 휘돌아 가야 하는 

        우리 동네 앞 강 자락은 야트막하였다.  

        어른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쉽게 건널 수 있었다.

        늘 종아리 까지만 차오르는 물길이었다.


        이 물길을 건너면 여름에 피서객들이 찾아드는 곳이 있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커다란 나무들도 있고,

        울창한 숲이 있고  

        이제 수확에 이른 반짝이는 채마들이 있는 곳 

        그곳은 

        또 다른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잡았다.

        피서객은 그들의 모습을 덤으로 즐길 수 있었다.


        개울을 건너면,

        그 곳에 해수욕하기 마땅한, 아이들이 놀기 좋은 

        모래 밭 자갈밭이 있다.

        그곳에서 여름 동안, 동네 아이들의 왁자지끌 즐거운 웃음 소리가 이어진다. 

        어른들도 나타나 맑은 물에 무더위를 씻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무 그는 아래서 오수를 즐기기도 한다.

         

        한 쪽에서는 동네 젊은 남정네들이 모여 고기를 굽고 소줏잔을 기울인다.

        여름 한 날의 여유가 점점 즐거워진다.

        이 참에 여름 날의 무더위는 맑은 강물에 소리없이 씻겨 내려간다. 

        구릉 위에는 몇 개의 텐트가 쳐진다.

        그 속에서 동네 어른들, 아낙네들이 둘레둘레 앉아 고스톱을 즐기기도 한다.

        여름을 즐기기에 마땅하고 참한 장소다.


        아이의 반 친구 엄마들이 의기투합하여 아이들을 위해 물가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날씨는 쾌청하였고 아이들도 엄마들도 들떠 있었다. 

        모두들 알거니와 홍천강 물가 피서는 늘 즐거웠고 좋았다. 

        아이들은 야트막한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엄마들은 그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지즐대었다.

        점심 때가 되어 저마다 솜씨를 부려서 준비한 도시락을 펼쳐 놓고, 

        돗자리 위에 마치 꽃이라도 피워 놓은 듯,

        솜씨를 부린 음식들을 나누어 먹었다. 

        바로 눈 앞에서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다가 물에 뛰어 들다가 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이 너무 오래, 심하게 놀면 안되겠지,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찰라 빗방울이 똑똑 일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주섬주섬 짐을 거두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홍천강 상류 쪽의 하늘이었다.

        마치 먹물을 잔뜩 갈아 부은 것 처럼 검게 변한 모습이었다. 


        "하늘이 정말 먹빛이네. 저렇게 새까만 먹구름은 처음보겠네!"

        나는 놀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한 참을 새까만 먹구름을 보고 있었다. 


        도시에서 건물 사이로 보이는 조각난 하늘에만 익숙했던 터라 

        그곳에 무시무시한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여튼


        "어서 물을 건너야지!"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개울에 발을 담근 순간,

        물 속의 자갈이 


        "미끈!"

        하고 나의 몸 중심을 앗아갔다.


        "미끌미끌...미끈..."


        겨우 강을 반만큼 건넜는데...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개울물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물살도 걷잡을 수 없이 거세어지고... 

        개울의 중심에 선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한 손에는 아이를 꼭 붙들고 다른 쪽에는 물놀이 가방을 꼭 붙들고... 


        엉거주춤하는 사이, 겨우 수 초 안에 물이 허벅지에 이르고 허리를 적시고...


        "어머머머!" 

        이러다간 큰 일이 나겠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도저히 저 켠까지 건널 수가 없겠구나!" 


        지난 곳을 되돌아 보았으나 사정은 같다.

        그때 강 이쪽 저쪽에서 나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 가방 부터 얼른 놓으세요!"


        가방에 물이 가득 들이 차서 작히 쌀 두 말의 무게가 되어 

        나를 물길 속으로 잡아 끌어 처박을 심산을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놀라며 나는 가방을 놓았다. 

        억센 힘으로 나를 몰아쳐 가던 그 힘에서 놓여나자 겨우 

        기슭을 향해서 몇 걸음을 뗄 수가 있었다.

        보고 있던 장정 서너 명이 손을 잡고 밧줄을 만들었다 .

        그들 중 한 사람이 내 손을 잡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날 나는 죽음 직전의 두려움을 맛 보았다. 


        지금도 생각이 미칠 때 마다 와들와들 떨린다.

        야외용 어깨걸이 비싸지도 않은 비닐 가방, 그것이 무엇이건데 움켜쥐고

        얼른 놓지를 못하였을까? 

        그것을 놓을 생각조차도 못하였을까?


        그렇게 세찬 물길 속으로 나를 마구 잡아 끌던 그 가방! 

        그 속 외롭게 간 친구가 보내준 시집, 

        거퍼거퍼 음미하며 그를 그리워한 그 시집 때문이었을까? 

        내가 전하려다 못 전한 예쁜 지갑, 

        거기 담아 놓은 내 사랑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기어이 놓아 버렸다. 


        그리고 

        아이도 나도 목숨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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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1)

    • 2019-07-04  이문자  [신고]

      우리들,
      세상 것들을 붙들고
      힘겨웁지는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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