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아니어요
동시사랑 이문자
하마 십년도 전에 심어 이제 그 키가 10미터도 넘게 된 우리 집 돌배나무,
밑 둥우리께를 널리 파고 붓꽃을 심었다.
보라색과 흰색이 제 맘대로 어우러져 피고 있다.
나 사는 이곳은 봄이 늦어 이제 기세좋게, 윤기있게, 벋어오르는 잎을 보며
혹시나 몰래 봉오리라도 맺었나 찾아 보았다.
아직도 차가운 기온에 움추리고 숨은 듯 기척이 없다.
선배님께서 집 둘레에 가득 하던 붓꽃을 갈라주어
나의 뜰에 심은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올해는 잎이 올라오는 기세로 보아 전년 보다 꽃이
훨씬 많이, 좋게, 필 듯하다.
선배님께서 워싱톤으로 이사를 하신단다.
사십 년을 넘게 사시던 바로 대학 언저리,
정든 주택을 팔고 어찌 떠나실까?
얼마나 섭섭하실까?.
그곳을 떠나신다는 계획을 들으며 집이 거래 되기까지 한 동안 시간이 걸릴테고...
하고 느긋하게 생각을 했었다.
남편 되시는 교수님 (두 분은 부부 교수시다.)께서 몇 년 전 부터 병중에 계셨다.
선배님께서는 본인도 노년이시라 병수발하시는 일이 적잖이 힘이 드셨을게다.
그러나 조금도 티없이 정갈하고 의엿한 모습으로 둘레와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셨다.
가끔씩 우리 부부를 청해 주셨고 그 답례로 우리도 그 분들을 뫼시기도 하여
나날이 조금씩 정이 들었던 터다.
이제 교수님께서 별세하신지 어언 한해가 넘었고...
여동생과 따님이 사는 워싱톤으로 옮겨 가시게 된 것이다.
이사하시기 전에 점심 식사를 뫼시겠다고 전화를 드렸다.
시간을 못 내신단다.
이사하기 전에 종합 검진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되고,
이삿짐 센터의 일정도 그러하고, 비행기표 날짜도 그러하고...
이때껏 쓰시던 전화번호를 가지고 가니 곧 서로 연락하자 하신다.
이사간 곳의 병원은 금방 진료 받기에 절차상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고로
어려움이 있어 익숙한 이곳에서 검사와 처치를 받고 가시겠단다.
"너무 섭섭해요"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우리들 누구없이 언젠가는 헤어지는 인생이 아니냐?"고 말씀하신다.
나는 순간 놀라며,"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되시지요?" 하고 반문하였다.
"잘 가세요! 조심히 가세요!"
"잘 있어! 건강하게!"
"또 쉬이 안부 전화 드리겠어요." 이렇게 통화는 끊기었다.
워낙이 느릿한 나는 곧 바로 생각이 못 미치었다.
'혹시 선배님의 건강이 심각하신 것은 아닐까?
'선배님! 아직은 아니어요. 아닙니다.
몸에 밴 기품과 우아한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좀 더 긴세월
노년의 참멋을 보여 주세요.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 주세요.'
'새 봄입니다. 부활의 봄입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입니다.
마른 나무에도 물이 오르고
말랐던 풀들도 기운차게 솟아 올라요.'
'선배님! 힘내세요.'
돌배나무 밑둥에서 곱게 피어날 붓꽃들을 기다리며
'아무 문제가 아니었노라고, 건강하시다고...'
선배님의 좋은 소식 기다리겠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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